신발에 대한 추억

Posted 2010. 3. 16. 01:26

언제부터인가 운동화를 신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운동화를 신었던 것은 아니고 구두에서 캐주얼 구두로 그러다 운동화로 신게 되었던 것이죠. 구두는 발이 아프고 불편해서 캐주얼 구두로 바꿨죠. 그러다 아이들 신발을 오프라인 매장이 아닌 인터넷으로 구매해 신었는데 둘째가 생각과 달리 마음에 안들던지 크다고 꼬투리를 잡아 신지 않겠다고 해서 "그럼, 내가 신지!" 하고 신었던게 그 시작이였습니다.

나이가 들었나 봅니다. 어머니가 아버지 낡은 빤스를 입으시던 것처럼 아이들이 싫증나서 입지 않는 티셔츠도 죄다 제가 입고 있습니다. 




신발에 대한 좋지 않은 추억 하나 
장래를 염두에 두고 사귀던 동갑내기 아가씨였습니다. 결혼하자고 손가락을 걸고 약속이나 확인한 것은 아니였지만 서로 암묵적으로 그러리라고 생각하고 있던 사이였습니다. 수줍은듯 조용 조용 말하는 전형적인 한국 여인상을 가진 아가씨입니다. 

아스라이 기억도 가물가물한 어느날, 인천 차이나타운으로 둘이 놀러 갔습니다. 차이나타운에서 점심 먹고 해가 뉘였뉘였 질 때까지 배회하다 아가씨가 말했습니다. "우리 오빠 회사가 여기서 가까워. 가볼까?" 생일에 초대 받아 집에 가서 뵈었던 아가씨의 오빠는 K제화 **지점의 지점장으로 계셨었습니다. "어! 왔어? 마음드는 신발 하나 골라봐! 내가 사주는거야! 하, 하" 그래서 구두를 하나 얻어 신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가씨와 헤어지게 된 건 그로부터 채 3 개월이 지나지 않았을 때 입니다.
저는 아직도 신발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신발에 대한 좋지 않은 추억 둘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일주일에 한번씩 혈장을 수혈 받으러 다녔습니다. 병원에 접수하고 혈압재고, 체중재고, 혈액 채취하고 대기하다 간호사가 호명하면 담당 의사를 만납니다. "별일 없으시죠?", "약, 잘 잡숩고 계시죠?" 주치의의 질문은 이게 전부였습니다. 이미 혈액검사의 결과에 나타나 있으므로 주치의는 달리 할말이 없었는지 의학적 질문이 아닌 별일 없냐는 평범한 일상의 질문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병원에 갈 때 꼭 정장에 구두를 신으셨습니다. 남 앞에 나서는거라 그려셨을 겁니다. 그래서 좀 더 편하시라고 랜드로바류의 캐주얼 구두를 사다 드렸습니다.

담당 의사는 일년도 넘는 사례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캐주얼 구두를 딱 두 번 밖에 신으시지 못하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신발 때문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발에 대한 추억
퇴근 후에 만나서 밥 먹고 차 마시고  둘이 마주보고 얘기하다 애인 집 또는 동네 어귀까지 바래다 주고 헤어져서 심야에 혼자서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전부인게 단조롭다 못해 허무하기까지한 것이 우리네의 데이트였었습니다.

그래서 바울라와 사귀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시작한 것이 "볼링"이였습니다. 제주도로 간 신혼여행 첫날 밤, 새벽 두시까지 했던 것도 볼링이였습니다. 볼링 공은 "하우스 볼"을 사용하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대화(신발빌림) 할 때마다의 꺼림직함과 금전적 아까움 때문에 볼링화를 사기로 했습니다. 볼링 신발을 사기 위하여 볼링점 매장에 들어섰을 때 저는 바울라에게 이렇게 일갈 했습니다.

"니껀 니가 사라. 내껀 내가 살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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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오신 모든 이에게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