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전례와 성가
Posted 2008. 7. 26. 09:42
미사전례 중에 우리 성가대나 신자가 다같이 부르는 미사곡(미사통상문)에 대하여 그 기원과 명칭. 역할 등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여기에 소개하는 글은 이홍기 신부의 미사 전례 1997년 판을 기초하여 소개함을 미리 밝혀 둔다.
명칭과 기원
1. 명칭
우리 신자들이 자주 말하고 듣는 "미사"는 그리스도교 전례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성찬식의 명칭이다. 그런데 이 성찬식은 미사라는 말 외에도 많은 명칭을 가지고 있다.
가. 성서의 명칭
신약성서에 나오는 미사 관계 명칭으로는 "주의 만찬", "빵 나눔", "주의 식탁" 등이 있다.
1. 주의 만찬(고린 11.20): 이 명칭은 "최후만찬"을 연상시킨다. 가장 초기의 미사 명칭이었던 것이 거의 확실하다. 비슷한 시기에 주께서 부활하신 일요일을 "주일" 이라고 불렀던 사실(묵시 1.10)이 이를 입증한다.
2. 빵 나눔(사도 2.42, 46: 20.7): 이 말은 본래 유대인들이 식사할 때에 빵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는 동작을 가르킨다. 그러나 유대계 신자들은 이 말을 미사의 고유 명칭으로 사용한 것 같다.
3. 주의 식탁(1고린 10,21): 주의 만찬과 비슷한 표현이 암시하듯이 주의 만찬을 거행하는 식탁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때로는 주의 만찬과 동일한 의미로 쓰였다. 이 명칭은 미사의 식사 특성을 잘 나타내며, 특히 영성체를 암시한다.
나. 교부 명칭
교부들이 사용한 미사의 명칭은 대부분 그 시대의 성체성사 신학을 반영하는데, 그 가운데 일부는 오늘날도 그리스도교계에서 애용하고 있다.
1. 에우까리스띠아(Eucharistia) : 미사와 함께 가장 많이 쓰이는 이 단어의 본 뜻은 "감사"이다. 예수께서 최후 만찬을 하실 때에 빵과 잔을 들고 바치신 감사기도 " 감사하신 후"(1고린 11,24 마태 26,26-27)라는 말에서 파생된 말이다.
2. 제사 및 봉헌 : 교부들은 이미 1세기 말경부터 신약성서의 최후만찬 기사나 히브리서 등의 영향을 받아 미사의 제사적 의미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고 이에따라 제사, 봉헌, 아나포라 등의 제사 명칭을 많이 사용하였다.
다. 미사
현재까지 우리 교회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Missa"의 어원과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많다. 라틴어 단어 "미사"라는 말은 고대 로마사회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았으며, 주로 전례 문헌에 나타나는 용어였다. 이 단어의 본 뜻은 "파견", "하직" 이었음이 확실하다. 이와같이 "미사"라는 명칭은 그 어원이나 말 뜻으로 보아 성찬의 신비를 드러내기에는 상당히 빈약한 것이 사실이나, 오랫동안 성찬의 대표적인 명칭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 고유 명칭이 되어버렸다.
해방절 만찬
공관 복음의 최후만찬 기사에 따르면 최후만찬은 분명히 유대 해방절 만찬중에 거행되었다.
그러나 이들 만찬기사는 최후만찬의 역사적 내용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고 초대교회의 성찬식과 저자들의 신학을 반영하기 때문에 최후만찬이 해방절(파스카)만찬이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최후만찬은 그 거행 날짜, 분위기, 의미 등에 있어서 해방절 만찬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사를 이해하려면 해방절 만찬에 대해서도 기본 지식은 갖추어야 한다.
가. 해방절 축제
해방절 축제는 오순절과 초막절과 더불어 유대 종교의 삼대 순례 축제이자(출애 23:17. 신명 16:16)동시에 가장 큰 축제였다. 유목생활을 하던 고대 유대인들은 매년 춘분 직후의 첫 보름인 니산달 15일(3월22일과 4월25일 사이)에 가축의 다산과 무사를 비는 종교행사를 가졌다. 그들은 그해에 태어난 맏배 양을 잡아 그 피는 초막이나 가축우리 입구에 바르고, 고기는 통째로 구워 제물로 바친 다음 먹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사는 동안에는 농경민에게서 누룩없는 빵 축제도 배웠다. 곧 매년 니산달 15일부터 21일까지의 한 주간 동안 전해의 수확을 감사하고 새해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햇곡식의 맏물과 누룩없는 빵을 제물로 바쳤다. 이들 축제는 그 동안에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와 연결되어 에집트 탈출 축제로 변했던 것이다.
나. 해방절 만찬
해방절 축제는 니산달 14일 저녁의 해방절 만찬으로 시작되면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각 가정에서는 14일 오전에 누룩을 모두 치우고, 오후에는 한 살 난 어린양을 성전에 끌고가 시편 113-118장을 읊으면서 죽인 다음(시편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피는 사제가 받아 제단에 뿌렸다. 이러한 예식이 끝나면 가장은 양고기를 집으로 가져가 저녁에 해가 지고 등불이 켜지면 가정 단위로 10-20명의 작은 공동체를 구성하여 해방절 만찬을 시작했다.만찬시간이 되면 밝고 성대하게 장식된 만찬실에 들어가 대표자를 중심으로 비스듬히 앉았다. 구약시대에는 참석자 전원이 서 있었으나 예수시대에는 비스듬히 앉는 자세가 해방을 상징한다고 여겨 합법화 되었다. 만찬의 순서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1. 시작예식 : 대표자는 포도주가 든 잔을 들고서 축제 시작을 선언하고 축일과 찬양기도를 바친다. 그러면 모든 이가 잔을 들고 포도주를 마신다. 이어서 주례는 손을 씻고 쓴나물과 채소를 소금물이나 식초에 담그고 찬양기도를 바치며 모든 이는 이것을 먹는다. 쓴나물은 양념,정화,보호, 등에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만찬상에서는 에집트에서의 쓰디쓴 종살이를 상징하였다. 채소는 희망의 봄을, 소금물은 에집트에서 흘린 눈물을 상기시켰다.
2. 파스카 학가다(Pascha Haggada)예식 : 양고기가 식탁에 놓이면 주례는 두 번째 포도주 잔을 채운다. 그러고 나서 참석자 가운데 가장 나이 어린 소년이 누룩없는 빵, 소금물에 찍어 먹는 쓴나물, 구운 양고기의 유래에 대하여 묻는다.(성전이 파괴된 70년 이후에는 파스카의 밤, 비스듬히 앉는 자세에 대해서도 질문하였다.) 주례는 이 질문에 영관되는 내용이 수록된 “미드라쉬”를 낭독한 다음(출애 12.1-14 참조) 질문에 대답한다. (이 예식은 미사의 말씀의 전례에 해당한다.) 주례의 대답이 모두 끝나면 모두 첫 번째 알렐루야 시편(113장,114장)을 읊으면서 해방과 기쁨과 빛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고 술잔을 비운다.
3. 본식 : 이어 주례는 빵을 들고 찬양 기도를 드린 다음 나누어서 참석자들에게 주며, 쓴나물과 양고기를 위해서도 기도를 드린 다음 본 식사를 한다. 이 식사는 축제 분위기 속에 진행된다.
4. 식후 감사예식 : 식사가 끝나면 주례가 다시 술잔을 들고 음식,땅, 예루살렘 및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찬양과 감사의 내용으로 되어있는 길고 장엄한 기도를 바친다.이 기도가 끝난 다음 모두 잔을 마신다.
5. 마침 예식 : 만찬례는 두 번째 알렐루야 시편(114장-118장,또는 115장-118장)과 마침 기도로 끝난다. 이 해방절 만찬례는 한마디로 에집트 탈출 사건을 기념하면서 하느님께 찬양과 감사를 드리고 미래의 메시아를 기다리는 성대한 예식이었다. 미사 역시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로 완성된 인류구원을 기념하고 찬양과 감사를 드리며 천상 잔치를 기다리는 예식이다. 따라서 해방절 만찬과 미사는 공통점이 많고 그런 의미에서 미사는 새로운 해방절 만찬례라고 할 수 있다.
미사 전례
미사의 기원
미사는 예수께서 수난 전날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거행하신 최후만찬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신약성서에서 명시적으로 최후만찬에 관해 언급하는 부분은 사도 바울로가 50년대 중엽에 쓴 1고린 11:23-26과 70년경에 기록된 마르 14:22-25. 그리고 80년대에 기록된 마태 26: 26-29와 루가 22:19-20 등의 네 만찬기사이다. 그 가운데 고린토 전서와 루가 복음. 그리고 마르코와 마태오 복음의 기사가 서로 비슷하여, 전자를 안티오키아 양식이라 하고 후자는 마르코 양식이라 한다.
가. 최후만찬의 배경과 구성요소
최후만찬의 날짜에 대해서는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공관복음은 유대 해방절 만찬때에 최후만찬이 거행되었다고 기술하는 반면, 요한 복음은 그 전날이라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처형 당하신 날은 안식일 전날인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최후만찬일은 목요일이었음이 분명하다. 최후만찬이 해방절 만찬이었든 아니었든 상관없이 해방절 축제 분위기 속에서 집행되었다.만찬 장소는 예루살렘 성 안의 어느 큰 집 이층방이었으며(마르 14:13-15 루가 22:10-13) 이 만찬에는 예수님 외에 유다를 포함한 열두제자가 다 참석하였다.
공관복음이 전하는 대로 최후만찬이 해방절 만찬중에 거행되었다면 만찬 빵은 누룩없는 빵 이었을 것이다. 누룩없는 빵은 에집트의 노예생활과 탈출을 상기시키는 상징적인 특별 음식이었다. 그리고 포도주는 특히 약속의 땅에서 누릴 행복, 생명과 용서, 종말의 행복과 위로 등을 상징하였다.
나. 최후만찬의 절차
1. 전식 2. 본식 3. 후식 이 절차 및 내용에 대하여는 전편에 상세히 기술하였다.
최후만찬도 이러한 종교식사 형식을 따르고 있다.
1. 먼저 예수께서는 빵을 손에 드시고 찬양 기도를 바치셨다.(감사기도) 식전 찬양 기도로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 우리 하느님이시고 온 누리의 임금님이신 주님, 찬양 받으소서. 주님께서는 땅에서 빵을 생산해 주시나이다. " 최후만찬이 해방절 만찬이었다면 다음의 기도를 덧붙였을 것이다. " 주님께서는 계명을 통해 저희를 거룩하게 하셨고 누룩없는 빵을 먹으라고 명하셨나이다."
2. 이어서 예수께서는 빵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셨다.
3. 그리고 그 빵을 제자들에게 주셨는데. 이때에 뜻밖에 말씀을 하셨다. "받으시오, 이는 내 몸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몸을 받아 다른 음식과 함께 먹었다.(1고린 11:25 루가 22:20 "저녁을 드신 다음" 참조)
4. 식사를 마친 다음 예수께서는 다시 잔을 들고 찬양 기도를 바치셨다.
5. 기도 다음 예수께서는 포도주에 잔을 제자들에게 주면서 다시금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 이는 내 피입니다.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계약의 피입니다."(마르 14:20)
만찬을 마친 다음 예수께서는 성찬 반복 명령을 내리셨다. " 여러분은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시오." 그런데 이 성찬반복 명령은 초대교회가 정기적으로 성찬을 거행하던 중에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삽입한 것으로 보인다.
4. 미사 전례의 발전 역사
최후만찬 예식이 현재의 미사 전례에 이르기까지의 발전 역사는 매우 복잡하고 그 내용이 광범위하다. 그 가운데 우리는 현행 전례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요소만 요약해서 살펴보겠다.
1. 사도시대 초기의 미사는 최후만찬과 같이 1) 빵에 관한 말씀과 행위 2) 식사 3) 잔에 대한 말씀과 행위의 순서로 거행하였다.
2. 1세기말이나 2세기 초엽에는 신자수가 늘어나고 식사에서 오는 여러 가지 폐단으로 말미암아 식사는 미사에서 떨어져나가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늦어도 2-3세기경에는 대부분 지역에서 미사와 식사가 완전히 분리되었다.
3. 식사가 미사에서 떨어져나간 뒤에 그 자리에 들어선 것이 독서와 강론 등으로 구성된 이른바 말씀의 전례이다. 이 말씀 전례의 독서 사이에 “응답 시편”이 들어간 때는 2세기 말경이고 “알렐루야”는 4-5세기경에 그리고 “신앙고백”은 6세기 중엽에 삽입되어(589년의 제3차 뜰레도 공의회), 7세기에는 현행 말씀 전례와 거의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4. 1-4세기의 성찬 전례에 대해서는 기본구조 외에는 정확히 모른다. 다행히 유스띠노의 호교론에서는 당대의 성찬 전례 절차를 간단히 소개하는데 그 순서를 보면 “평화의 입맞춤”, “예물 운반”, “감사 기도”와 “아멘”, “영성체”로 되어 있다. 성찬 전례의 중심 부분인 “감사 기도”는 4-5세기까지만 하여도 고정된 경문이 아니었고 주례사제가 자유로이 바치는자율기도였다. 이러한 감사 자율기도는 4세기경부터 차츰 고정되기 시작하여, 서방교회는 4-7세기에 오직 “로마전문”만을 사용하게 되고 동방교회에서는 “아나포라”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감사기도에 거룩하시도다(Sanctus)가 들어간 시기는 4세기 말경(동방에서)이고, 후반부(Benedictus)는 7세기경(서방에서)이다.
5. 로마제국을 통일한 콘스탄티노 황제는 313년에 그리스도교 박해를 중지시키고 종교자유를 허용하였다. 그 여파로 380년에는 그리스도교가 동,서 로마제국 내에서 국교의 특권을 누리게 됨에 따라 급격한 변화와 성장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신자수의 급격한 증가로 미사 집전 장소가 작은 규모의 가정집이나 집회소에서 큰 건물로 변하였다.
6. 395년에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리됨으로 말미암아 서방 전례에서 떨어져 나간 동방 전례는 다시금 “안티오키아 계보”와 “알레산드리아 계보”로 나뉘었다. 동방과 달리 서방에서는 라틴어가 2세기 후반부터 전례언어로 자리잡기 시작하여 4세기 후반의 다마소 교황(366-384) 이후에는 완전히 공식 전례언어로 그 위치를 굳혔다.
7. 궁중예식의 영향으로 미사 전례 전체와 기도문들이 장엄하고 교계적인 특성을 띠게되었다. 본기도, 침묵기도, 영성체 후 기도 등 주례기도가 등장하게 되었고 장엄하고 긴 행렬은 입당송, 봉헌송, 영성체송, 등 행렬 동반 노래를 불러 들였다. 교우들이 바치는 예물도 빵과 포도주와 물외에 기름,초,우유,과일,곡식 등으로 다양해졌고, 식탁이 제단 형태로 바뀜에 따라 예뭉 준비 의식이 길어졌으며 그 의미도 제물을 바치는 봉헌 예식으로 변하였다. 한편 성가 부분에 있어서는 입당송,봉헌송,영성체송, 등에 그레고리안 성가가 도입되었지만 대중성을 띠지는 못하였다. 이렇게 4-7세기 사이에 시작 예식과 마침 예식을 비롯하여 예물 준비 예식, 영성체 예식이 대부분 정착되어 현행 미사 전례와 비슷한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성 가
1. 중요성 : 모든 전례는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을 기념하고 재현하는 행사이다.
성가는 바로 이러한 전례의 의미를 더욱 완전하게 표현하는 데 큰 몫을 한다. 찬미, 감사, 기쁨 등의 마음을 표시하는 데는 단순히 기도문을 외기보다는 노래로 부르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게다가 모든 전례는 천상 예루살렘의 전례를 미리 맛보게 한다. 성서와 교부들도 그러한 뜻으로 노래를 권장하고 있다.
" 나는 하느님의 이름을 노래로 찬양하리라. 송가로 그 분을 칭송하리라. "(시편 69 : 31)
" 성시와 찬가와 영가로 서로 이야기하고 여러분의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성시를 읊으시오. "(에페 5 : 19)
" 성시와 찬가와 영가를 은총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으로 하느님께 노래하시오 "(골로 3 : 16)
" 누가 기쁩니까? 그러면 노래를 부르십시오 "(야고 5 :13)
" 노래를 부르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특징이다 "
"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은 두 번 기도하는 것이다. "(성 아우구스띠노)
따라서 성가는 성대한 전례의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다.(전례헌장 112항) 성가는 기도를 더욱 감미롭고 뜨겁게 하며, 예식을 성대하고 고상하게 하며(전례헌장 113항) 천상 전례를 반영한다.
2. 미사 성가 지침 : 미사 전례는 모든 전례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공적인 특성이 강하며 장엄성을 지닌 전례이다. 그만큼 중요한 전례이기에 성가의 역할도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회는 여러 문헌을 통해 미사 성가 지침을 내리고 있다.
1) 주일과 축일 : 주일과 축일 그리고 교우들이 많이 참석하는 미사에는 성가를 부르는 것이 좋다. (경신성 훈령[성음악] 1967.27항) 교우들이 많이 참석하는 미사에는 가능하다면 성가 부르기를 권한다. " 성가가 많을수록 더 나은 전례가 된다 "
는 일종의 격언을 기억하고 적용하면 크게 그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낭독 미사, 곧 성가없는 미사는 없어졌다는 말이 아니다. 전례 규정은 되도록 지키는 것이 좋지만 사목 여건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2) 전례는 공동체 예배이므로 현행 성가 지침은 공동체 성가를 대단히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미사중에 성가를 부를 수 있는 부분은 거의 대부분 공동체 성가 부분이다. 따라서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이들 공동체 성가 부분은 공동체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 집회 전체가 환호하거나 찬양하는 노래를 성가대나 독창자가 독차지하고 교우들은 침묵을 지키게 한다면 그 성가는 이미 본래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만다.
3)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공동체 성가를 강조하다 보니 성가대의 역할이 상당히 위축되었을 뿐 아니라 일부 사목자들은 성가대 무용설까지 내세우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성가대의 역할과 임무를 잘 알지 못한 데서 생긴 것이다. 성가대의 주된 임무는 교우들과 함께 노래하며 도와주고 지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가대가 해야 할 부분 즉, 고유 미사 부분을 독자적으로 노래하는 것이다. 성탄, 또는 부활 대 축일에 흔히 보듯이 축제 미사를 장엄하게 지내기 위하여 미사 통상문( 자비송, 대영광송, 거룩하시도다, 하느님의 어린 양)등 주요한 공동체 성가를 공의회 이전처럼 성가대가 독점하는 폐습은 하루빨리 고치어야 한다.
미사 성가 선택 지침
미사 중에는 성가를 부를 수 있는 부분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많다.
1) 미사를 비롯한 전례의 성가를 선택하는 첫 번째 원칙은 많은 성가 부분 가운데 더 중요한 부분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부분이라 함은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성가를 부를 수 있는 부분이 주요 성가 부분이다. 그 다음에 환호, 찬미가, 등 기도문 자체가 본래부터 노래이거나 노래로 불러야 그 의미나 특성이 나타나는 부분 역시 더 중요한 성가 부분이다
. 예를 들면 전형적인 찬미가인 "대영광송", 복음환호성인 "알렐루야" 감사 찬미가인 "거룩하시도다", 성체성혈 축성 후의 "기념환호(주님께서 오실 때가지). 끝 영광송 후의 공동체 환호인 "아멘" 등은 그 자체가 노래이지 그냥 외는 기도문이 아니다. 그래서 미사중에 성가를 두 번만 부른다면 가장 중요한 성가인 축성 후의 "기념 환호"와 끝 영광송 후의 "아멘"이 당연히 첫 자리를 차지한다.
2) 성가는 거행하는 전례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하는 요소이다. 따라서 미사 성가는 그 전례 시기, 축일, 미사의 부분에 맞아야 한다. 이를테면 입당성가 즉 시작성가는 그날 경축하는 전례시기나 축일을 반영하는 성가를 고르고 영성체 성가는 성체성가에서 고르는 것이 원칙이다.
3) 성가는 곡보다 가사가 중시되기 때문에 1-2절만 보지 말고 다른 절도 고려한 다음에 선택하여야 한다.
4) 이상의 성가 선택 원칙대로라면 시작성가, 봉헌성가, 성체성가, 마침성가 등 전통적인 성가 부분이 당장 문제가 된다. 예를 들면 마침성가는 전례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는 부분이다. 미사의 본 예식은 강복과 파견으로 사실상 끝이 났기 때문이다. 굳이 이들 부분에 성가를 부른다면 더 중요한 부분을 선택하는 원칙에 따라 위의 1)항에 언급한 "기념 환호", "아멘", 등을 당연히 노래로 불러야한다.
5) 우리 교회가 이미 중세 초기부터 불러오던 그레고리오 성가는 비록 현대인들에게 다소 생소하고 그 가사가 라틴어로 되어 있어 불편한 점이 많지만 그 예술적 가치로 보나 가락의 조화 등으로 보아 여전히 가장 좋은 전례 성가이다. 기도문을 전례 의미에 맞게 가장 잘 표현하는 면에서는 그레고리오 성가가 단연 윗 자리를 차지한다. 따라서 신학교, 수도원, 주교좌 성당, 그 외에 여건이 좋은 성가대에서는 자주 그레고리오 성가를 불러 이를 유지 발전시켜야 한다.
6) 전례의 토착화를 위하여 지역과 민족의 정서에 맞는 토착성가를 육성.발전시키기를 권한다. 그러나 토착성가라 해서 무조건 좋은 성가는 아니고 전례와 조화를 이루는 전례성가라야 한다.
현행 미사 전례는 크게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부분인 말씀 전례는 말씀의 식탁인 독서대에서 거행되며 말씀의 양식을 마련한다. 성찬 전례는 성찬의 식탁인 제대에서 거행되며 성체성혈의 양식을 마련한다. 그외에 미사 전례를 시작하는 "시작예식"과 마감하는 "마침예식"이 첨가되어있다.
1. 시작예식 : 초 세기에는 시작예식이 없었다. 그러다가 4세기에 이르러 로마제국 내에 종교 자유가 보장되면서 신자수가 급증하고 미사 집전 장소도 큰 건물로 옮겨지자 행렬도 길어지고 제단 앞에서 성직자들이 엎드려 기도하는 등 하나 둘씩 시작예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 예식이 현재와 같이 형식을 제대로 갖춘 것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개정된 현행 미사 전례부터이다. 시작예식은 "입당" "인사" "참회" "자비송" "대영광송" 및 "본기도"로 구성되어 있다.
가) 입당 : 직접적인 자료는 없지만 입당 노래가 도입된 때는 그레고리오 1세 교황(+604)이전인 것 같다. 이 노래는 5세기 이래 교황이 로마 시내에 있던 일곱 머리 교회를 정기적으로 돌면서 미사 드릴 때 성당으로 행렬하며 부른 속죄대송(안티포나)과 "기리에" 호칭기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초기의 "입당송"은 대부분 주례 환영가 또는 축제 시편으로 구성되었는데 처음에는 성가대나 독창자가 부르다가 차츰 교우들도 입당대송(안티포나)을 부르면서 노래에 참여하게 되었다.
입당송을 노래로 부를 때엔 [로마성가집]에 있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르거나 주교회의가 인준한 성가집에서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흔히 입당송을 입당성가라 한다. 입당송은 행렬동반 노래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행렬에 맞추어 시작하고 끝을 맺는 것이 좋다.
나) 인사 : 입당행렬은 사제와 봉사자들의 제대인사, 십자성호 및 교우인사로 이어진다.
1. 인사 : 사제와 봉사자들은 제대에 이르러 정중하게 절한다. 제대 가까이에 성체를 모신 감실이 있으면 그 곳을 향해서도 절한다.
2. 십자성호 : 제대 인사가 끝나면 사제는 주례석이나 독서대로 간다. 사제와 신자들은 선 채로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면 교우들은 "아멘" 하고 응답한다. 십자성호가 교회 예식에 들어온 시기는 2세기경이다. 당대의 입교 예식을 보면 주례가 예비신자의 이마에 십자 표시를 하였다. 4-5세기 경부터는 사제가 오른손으로 사물에 십자를 그리는 형식(소 십자성호)이 전례안에 도입되었다. 현재와 같은 십자성호는 이미 5세기경에 나타나지만 이것이 널리 보급된 시기는 13세기 부터이다. 초기에는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어깨로 넘어가는 형식을 취했으나 13세기 서방전례에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어가는 형식이 보급되었다.
3. 교우 인사 : 미사에 인사가 들어 온 것은 3세기에 기록된 감사기도 첫부분의 대화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발전과정과 1-3양식은 여기에서는 생략토록 하겠다.
4. 미사안내 : 인사 후에 사제 자신이나 다른 자격있는 봉사자는 그날 미사의 뜻을 짤막하게 알려줄 수 있다.
다) 참회 : 참회의 구조는 참회 권고, 공동고백, 사죄경으로 되어 있다. 이 부분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라) 자비송(Kyrie)
참회가 끝나면 자비송을 규정에 따라 외거나 노래한다,(총지침 30항) 참회때에 자비송을 이미 바쳤으면 생략하여도 된다.
1. "자비송"은 원래 고대 로마나 그리스 사회에서 신도들이나 군중들이 신이나 황제 또는 개선 장군을 환영하며 맞이하는 군중의 환호였다. 고대 동방인들은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향해 허리굽혀 절하면서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eleison hemas)하고 외치며 절하곤 하였다. 그리고 다른 신에게 기도할 때에나 황제, 또는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개선행진 할 때에도 "기리에 엘레이손"을 반복하여 외치며 열렬히 환영하곤 하였다.
2. 자비송이 언제부터 미사시작 예식 부분에 들어왔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아마도 5세기 동방에서 먼저 전례 환호로 사용했을 것이다. 4세기 말경 기록된 [에테리아 여행기]를 보면 예루살렘에서 바치던 저녁기도 중 부제가 기도 지향을 말하면 소년들이 매번"기리에 엘레이손"하고 환호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기리에는 처음부터 간청기도의 일부인 공동체의 응답 환호였음을 알 수 있다. 서방교회는 5세기 말엽이나 6세기 초엽에 동방에서 순례자들을 통해 받아들여 성무일도와 미사때에 불렀다. 그리고 그레고리오 1세 교황 때에 기리에와 그리스떼가 이미 지향이나 간청에 대한 응답이 아닌 단순한 독립 환호로 현재 위치에 정착되었다. 8세기 이전에는 반복 번수가 기리에 세 번, 그리스떼 세 번, 그리고 다시 기리에 세 번 등 아홉번으로 확정되었다. 아마 세 번은 성서의 거룩함을 아홉 번은 구품 천사를 상징한 것 같다.
3. 현행 미사 지침(총지침 30항)에는 자비송을 두 번씩 부른다고 규정한다. 가능하면 전공동체, 곧 교우들과 성가대 또는 교우들과 선창이 함께 노래로 부르도록 권한다.
대영광송(Gloria)
1. 일명 "Gloria" 또는 "천사 찬미가"(Hymnus Angelicus) 라고도 불리는 대영광송은 성령 안에 모인 교회가 하느님 아버지와 어린양을 찬양하고 간청하는 가장 오래고 훌륭한 찬미가이다. 동방에서 전래된 이노래의 저자나 연대는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동방에서는 이 성가를 성무일도의 아침기도 중에 불렀다. 서방교회에는 4세기 초엽이나 그 이전에 흘러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4세기 중엽의 성 힐라리오 시대에 이미 사용된 기록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떼데움처럼 축제 찬미가로 부르다가 4세기 중엽에 미사에 들어갔지만 오직 교황이 집전하는 성탄미사에만 사용되었다. 그후 차츰 주교 집전 미사에 들어 갔지만 성탄과 부활 주일 외에는 부르지 않았다. 그 후 차츰 확장되다가 주일, 축일 등 일반미사에까지 확장된 것은 11세기 말경이다.
2. 대영광송의 필사본은 그리스어와 시리아어 및 라틴어 등 세 개의 언어로 나뉘는데, 그 구조나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원문이자 가장 오래된 그리스어 사본은 380년경에 기록된 [사도헌장]에 들어있다.
3. 이 성가는 시편, 성서 찬가 등을 닮은 전형적인 찬미가(Hymnus)이다. 그 구조와 형식이 떼데움과 비슷하여, 흔히 두 성가를 쌍둥이 찬미가라고 한다. 구조는 서언인 천사의 노래, 본론인 하느님 찬양과 그리스도 찬양으로 되어있다.
1) 천사의 노래 : "하늘 높은데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천사들이 목동들에게 그리스도 탄생 소식을 전한 다음 부른 이 노래는 앞부분과 뒷부분이 서로 평행을 이루면서 하느님의 영광과 사람들의 평화를 부각시킨다: 하늘/땅, 하느님/사람, 영광/평화,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고, 이 영광은 인간으로 탄생하시고 당신의 수난과 부활로 인류 구원을 완성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땅에서도 빛난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땅에서는 선의의 사람들에게 평화"이다. 하느님이 선의를 베푸는 사람들이 평화를 누린다는 말이다. 이 말을 그대로 직역하면 어색하기 때문에 의역하여 "땅에서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 하였다. "땅에서는 주님의 총애를 누리는 사람들에게 평화"로 표현하는 것도 원문의 의미를 살릴 듯 싶다.
2) 하느님 찬양 : 이 찬미가의 본론은 다순 명확하면서도 엇비슷한 말로 하느님을 성대하게 찬양한다. " 주님을 기리나이다, 찬미하나이다. 주님을 흠숭하나이다, 찬양하나이다. 주님 영광 크시오니 감사하나이다. 우리말에서도 "찬미하다", "찬양하다", "기리다". 등의 말이 의미상으로 별 차이가 없듯이 원문의 의미도 거의 비슷하다. 성가대가 독창, 이중창, 합창 등으로 장엄하게 노래하듯이, 또는 해변의 쉴새없이 밀려드는 파도가 대자연을 노래하듯이 그렇게 공동체가 주님이시며 하늘에 계신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마음껏 찬양한다. 이 찬양의 첫 번째 대상은 하느님이시다.
3) 그리스도 찬양 : 그리스도 찬양은 앞의 하느님 찬양과 같이 그리스도의 존칭을 부르면서 시작되는데 이 호칭은 신앙고백과 찬양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외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 하느님, 성부의 아드님, 하느님의 어린양," 원문에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먼저 나오고 " 성부의 아드님"이 뒤에 나온다. 그리스도의 찬양은 그분께 용서와 구원을 청하는 세 번의 간청 기도로 이루어진다. "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시는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 찬양은 고대 찬미가처럼 찬양과 간청의 이어 "홀로"로 시작되는 세 번의 찬양에서 다시 한번 절정을 이룬다. "홀로 거룩하시고, 홀로 주님이시며, 홀로 높으신 예수 그리스도님." 예수님은 그 거룩함이나 신적인 신분으로나 지위로나 어떤 다른 신이나 황제와 비길 수 없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분임을 강조하는 이 표현은 초세기의 수 많은 순교자들의 신앙고백을 연상시킨다. 순교자들의 굳건한 신앙을 기억하면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현대의 갖가지 우상을 뿌리치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부를 때 대영광송은 진가를 발휘한다.
4) 영광송 : 유대인들은 시편을 읊고 나면 그 끝에 영광송을 바쳤다. "성령과 함께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안에 계시나이다." 이와같이 대영광송은 그 명칭이 암시하듯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성서 구절로 시작하여 성삼 영광송으로 끝나는 장엄하고 긴 "대영광송"이다.
4. 대영광송은 그 기원이나 내용으로 보아 교회의 축일에 공동체가 다함께 부르는 축제의 노래이다. 과거의 그릇된 관습을 따라 성가대가 깐따다나 모테뜨 형식의 장엄미사곡을 부르고 신자들은 조용히 듣기만 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물론 축제의 기쁨이나 장엄성을 드러내려면 성가대의 아름다운 합창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장엄성의 기준은 성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례의 본 의미에 있는 것이므로 어디까지나 불가피한 경우에 한정되어야한다.
[말씀 전례]
말씀의 전례의 옛 명칭은 “예비미사” 또는 “예비신자 미사” 였다. 봉헌 미사는 신자들만 참석하였기 때문에 “신자미사”라고도 하였다. 말씀은 이미 흘러간 옛날 옛적에 하신 말씀이 아니라, 성서를 봉독하거나 전례 독서를 통하여 경청하는 이에게 직접 들려주시는 말씀이다.
교회 안에서 성서가 봉독될 때에 하느님이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며, 그리스도께서 그 말씀 속에 현존하시면서 복음을 선포하신다.
말씀의 전례의 구조는 이미 다 알겠지만
주일(대축일): 제1독서, 화답송, 제2독서, 복음 환호송, 복음, 강론, 묵상, 보편 지향기도로 구성되어 있고 사순 시기에는 복음 환호송의 일부인 “알렐루야”를 생략한다. 그리고 1년의 네 번은 복음 환호송 전에 “부속가”(sequentia)를 부른다.
가. 독서
독서라고 하면 1독서, 2독서, 복음을 통틀어서 말한다.
1) 3독서 : 3독서란 미사중에 복음을 포함하여 세 독서를 봉독하는 제도를 말한다.
2) 3년 주기 : [전례헌장5-6항]은 독서 주기에 대하여 “일정한 연수”라는 표현으로 기존의 1년 주기를 연장할 것임을 시사하였다. 독서 개정 위원회는 이 문제를 두고 신중히 검토 하였다. 2년 주기, 4년 주기 등이 검토되었으나 3년 주기가 채택되었다. 이 제도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루터교(1920년부터)와 프랑스 개신교(1963년부터)가 시행해 오던 제도였다. 그리고 독서 개정 작업 이전에 이미 많은 가톨릭 학자들이 이 제도를 제안하였다.
3년 주기가 선정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성서의 주요 부분을 다 봉독할 수 있다. 둘째, 길거나 짧지 않은 적당한 기간이다. 셋째, 세 공관 복음을 다 활용할 수 있고 특수한 시기에 요한 복음의 특징도 살릴 수 있다.
나. 독서 사이의 노래
말씀의 전례는 하느님이 말씀하시고 공동체가 화답하는 대화 형식으로 되어있다.
독서 사이의 노래는 화답송, 부속가, 복음 환호송이다. 이들 노래는 말씀선포를 더욱 발전시키고 심화시키며(화답송), 준비하고 강화한다(복음환호송). 따라서 말씀 전례를 구성시키는 중요한 요소이다.
가) 화답송 또는 화답시편
1. 1독서 후에 부르는 화답송은 말씀 전례의 본질적 부분으로써 사목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이 노래는 거의 시편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화답시편(Psalmus responsarius)이라고 한다.
2. 화답시편은 고대 유대인들이 회당 예배중에 성서를 봉독하기 전이나 후에 시편을 읊던 관습에서 영향 받은 것이 거의 확실하다.(에페 5:19, 골로 3:16 참조) 4세기경에는 대부분 지역에서 독서후에 시편이나 창작성가를 부르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초기에는 화답송을 독서대에서 불렀는데 7세기경부터 로마-프랑크 전례에서는 이 노래와 복음의 차이를 드러내려고 층계에서 부르기 시작하였고 여기서 층계에서 부르는 노래라는 의미에서 “층계송(Graduale)"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나) 복음 환호송
제2독서 후에 부르는 환호송으로 공동체가 복음을 선포하러 오시는 주님을 환영하는 노래이다. 환호송은 자체로 독립된 예식 또는 행위로서 회중이 자신들에게 말씀하실 주님을 맞으며 인사하고 신앙을 고백하는 노래이다.
1. “알렐루야”alleluia는 히브리어 “할를루야”를 그대로 음역한 전례적 환호이다.옛 로마 전례에서는 “아멘”, “알렐루야”, “호산나” 등 몇몇 중요한 전례 환호는 번역하지 않고 원문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알렐루야”는 그대로 직역하면 “너희는 주님을 찬양하라”이지만, 일반적으로는 공동체가 하느님 앞에서 또는 하느님을 향하여 외치는 기쁨의 환호로 쓰이고 있다.
2. “알렐루야”는 구약 시편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그러한 사실로 미루어 구약시대에 널리 쓰인 대표적인 예배용 환호였음이 분명하다.
3. “알렐루야”가 언제부터 전례안에 도입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묵시록이 암시하듯이 사도시대 초기부터 이미 사용되었으리라 짐작한다. 미사에는 아마도 3세기경에, 늦어도 4-5세기 이전에 도입되었을 것이다. 그때는 이미 화답 시편이 독서 화답송으로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도입 초기에는 축제 환호로 부활 주일, 부활시기에만 불리다가 차츰 주일과 축일에도 사용되었으며, 대 그레고리오 교황(+604) 이후에는 평일 미사에도 들어갔다. 전형적인 축제의 환호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사순시기, 대림시기,등의 속죄시기나 장례미사와 위령미사에는 부르지 않았다.
4. 복음전 성구는 알렐루야와 같은 시기나 또는 그보다 약간 늦게 미사로 들어 왔다. 처음에는 시편 구절로 구성되었으나 중세 초기 이래 짤막한 성서 구절이나 짤막한 창작시도 나타났다.
5. 알렐루야는 사순시기를 제외하고는 항상 노래한다. 과거에는 장례미사나 위령미사에는 부르지 않았으나 이제는 부를 수 있다. 이 환호는 주님안에 죽은 이들은 부활한다는 믿음과 희망을 잘 나타내기 때문이다.
6. 알렐루야를 노래할 때에는 모든이가 함께 시작하거나 성가대나 선창자가 선창을 시작하고 회중이 반복하는 형식으로 부를 수 있다. 복음 환호송은 하느님 백성 전체의 환호이기 때문에 독창자나 성가대만이 아니고 공동체가 함께 노래 불러야한다.
다) 부속가(sequntia)
1. 부속가는 9세기 프랑스 북부 프랑크 전례권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생성 동기는 가사가 없는 알렐루야 장식가락을 교육적으로 이용하기 위하여 가사를 붙인데서 출발하였다. 그러니까 알렐루야 부속가인 셈이다. 이 노래는 중세 중엽을 거치면서 대중화되어 왠만한 미사에는 다 들어갈 정도로 그 숫자가 많아졌다. 그러다가 1570년 출판된 비오5세의 로마 미사 전례서
에는 뜨렌또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대부분의 부속가가 없어지고 부활, 성령강림, 성체성혈 및 연미사(Dies irae) 부속가 네 곡만 들어 있다. 그후 1727년에 “고통의 마리아 축일”(Stabat Mater)가 부속가로 추가되었다.
2. 1970년 [로마 미사 전례서]에서는 전례헌장 81항의 정신을 살려 연미사 부속가를 탈락시키어 그 숫자는 다시금 네 가지로 줄어 들었다. 그리고 부활과 성령강림 부속가만 의무화 시키고 나머지는 자율에 맡겼다.
신앙 고백
1. 주일과 대축일, 또는 성대한 축제에는 강론과 묵상이 끝나면 모두 일어나서 신앙 고백을 한다. 이 고백문은 라틴어 첫 글자를 따서 "끄레도"(Credo) 또는 "심볼룸"(symbolum)이라 한다. 우리말로는 신앙고백분을 줄여 "신경"이라 한다.
2. 신경은 초세기 세례 신앙 고백문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물에 세 번 잠길 때 마다 성부 성자 성령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였다. 후대의 신경은 이 고백문과 연관되기 때문에 "저는 믿나이다"라는 개인 고백 형식으로 시작한다. 현존하는 신경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사도신경]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 [아타나시오 신경] [뜨렌또 신경] 등이 있다.
3. 미사중에 신앙고백을 하기 시작한 시기는 5세기 후반이며, 안티오키아 교회가 가장 먼저 도입하였으며, 그 후에 대부분의 다른 지역 교회에도 보급되었다. 6세기 말경에는 스페인의 똘레도 시노드(589)를 시발점으로 갈리아 등 라틴전례에도 퍼져 나갔다. 초기에는 주의 기도 직전에 외었는데, 그 위치로 미루어 영성체 준비기도의 성격을 띠었다. 미사에 신경을 도입한 가장 중요한 동기는 그리스도의 천주성을 부인하던 아리아즘 이단을 막고 믿음의 기본 도리를 확고히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신경의 위치가 현재와 같은 위치에 들어간 것은 8세기경 이었으며 로마 전례에서는 11세기 초엽에 신경이 미사에 들어갔다.
4. [니체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은 예루살렘에서 사용하던 세례 신앙 고백문이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신경의 배경이 되는 "니체아 공의회"(325년)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는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참된 하느님이심을 선포한 공의회들이다.
기본 내용은 예루살렘의 치릴로가 집필한 [예비신자 교리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350년경) 이것을 교회의 공식 신경으로 확정한 것은 "깔체도니아 공의회"(451년)이다. 로마 미사 전례의 공식 신앙고백문은 바로 이 니체아 신경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교구에서 이 니체아 신경을 채택하고 있다.
5. [사도신경]은 서방의 신앙고백문에서 발달했으며, 히뽈리또의 "사도전승"에서 암시하듯이 이미 3세기경에 기본 골격이 완성되었다. 그 후 똘레도 시노드(589년)의 결전으로 스페인과갈리아 지역에서 먼저 신경으로 미사에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현재의 경문은 프랑스의 [그리스도교 교리서](710-724)에 처음 나타난다. 독일의 가롤로 황제는 이 신경을 기초로 교회 쇄신을 단행했으며, 로마 미사에는 11세기초의 그레고리오7세 때 도입되었다. 그리고 13세기이래 서방 교회의 공식 신앙고백문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 신경은 사도들이 전해준 신앙고백문이라는 믿음에 따라 [사도신경]이라 불리지만 단순하고도 종교적 특성 때문에 "종교적인 신경"이라고도 한다. 니체아 신경과 함께 미사 전례서에 실려있고 또 자주 사용되지만 어디까지나 보충 역할을 하는 예비 신경이다. 한국 교회의 공식 신앙고백문은 [사도신경]이다.
거룩하시도다(Sanctus)
1. 감사송이 끝나면 모든 회중이 하늘의 천사들과 성인들과 결합하여 "거룩하시도다"를 노래하거나 왼다.
전반부: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하늘과 땅에 가득 찬 그 영광!
높은데서 호산나!
후반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높은데서 호산나!"
2. 라틴어의 첫글자를 따서 "쌍뚜스"(Sanctus)라는 명칭을 가지게 된 이 노래는 공동체가 감사의 마음으로 하는미께 영광과 찬미를 드리는 환호송이다.
3. 이 노래의 전례 기원에 대하여는 아직까지 정확히 아는 바가 없다.2세기경 유대인들이 안식일 아침에 회당 예배기도로 바친 "세모네 에츠레"의 제3 청원기도에 세 번의 거룩하시도다가 나오는 사실이 확인되고 또한 묵시 4,11~11에도 세 번의 거룩하시도다로 시작하는 노래가 나온다. 미루어보건대 2세기 또는 늦어도 3세기에는 이 노래의 전반부가 아침기도 등에서 불렸으리라 짐작한다.
4. "거룩하시도다"가 감사기도에 정식으로 등장한 때는 400년경으로써 동방의 문헌인 [사도헌장]에 나타나며, 이 노래는 그후에 서방으로 흘러 들어가서 5세기 초엽의 주교예식서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이 노래의 후반부(Benedictus)에 관해서는 5세기 중엽에 서방 교부 아를레의 체사리우스가 처음으로 증언한다. 동방 전례에는 8세기경에 행렬 때에 신자들이 부르는 후렴으로 나타난다.
5. 위의 역사에서 보여주듯이 이 노래는 그 형성 과정에서 이미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거룩하시도다"로 시작되는 전반부는 이사 6.3의 소명 환시에 나오는 스랍 천사들의 노래에서 따온 것이다."거룩하시도다"는 최상급을 나타냄과 동시에 점점 거룩함의 강도를 높이는 표현법이다. 이사야 예언자가 본 환시에서 천상 성소의 스랍 천사들이 하느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했듯이 이제 지상의 전례공동체도 천사와 성인들과 함께 하느님이 보여주신 구원 업적에 감사를 드리면서 찬양을 드린다. 그 분은 "온 누리의 하느님(Deus Sabaot)이시다. "호산나"는 아람어로써(히브리어는 "호시안나") 직역하면 "도움을 주십시요"이지만 일반적으로는 기뻐하며 외치는 공동체의 환호로 쓰인다. 노래의 후반부는 전반부에 비해 짧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 받으소서"는 시편 118.26a와 루가 19.38a의 말씀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이 구절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군중들이 외친 환호로 나타나고 있다. 그 분은 이제 다시 구원의 업적을 재현하시려고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제대에 오실 것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셨고 또 오시는 그 분을 공동체는 천상의 성인 성녀와 천사들과 함께 환영하는 마음으로 찬양의 노래를 부른다.
하느님의 어린양(Agnus Dei)
사제가 축성된 빵을 나누고 성작 안에 넣는 동안 성가대나 선창은 "하느님의 어린양"을 노래하거나 큰 소리로 외며, 교우들은 화답한다. 이 노래는 7세기경에 세르지오 1세 교황(687-701)이 동방교회에서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 교황은 콘스탄티노 시노드가 그리스도를 어린양이라 부르는 것을 금지하기로 한 결정에 반대하면서 축성된 빵을 나누는 동안 전 회중은 이 노래를 부르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8-9세기부터 작은 빵이 등장하고 빵을 나눌 필요가 없게 되자 여러번 반복하여 부르던 것을 세 번만 반복하였다. 여기에다가 이 노래는 차츰 바로 앞에서 거행한 평화의 입맞춤과 연결되어 마지막 간청 "자비를 베푸소서"는 "저희에게 평화를 주소서"로 바뀌었다.
현행 전례는 이 노래를 그 기원과 내용에 맞게 공동체가 함께 부르는 빵 나눔의 동반 성가로 환원 시켰다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세 번 반복하지만 빵 나눔이 계속되는 동안 더 여러번 반복할 수 있으되 마지막 구절은 "평화를 주소서"로 한다.
출처: http://www.ceciliachoir.net/study.html 박병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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