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Posted 2011. 2. 24. 17:19피정
• 주소 : (472-814)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 5리 산 93번지
• 연락처 : 일반전화: 031-527-8115, 휴대전화: 010-7200-8115
• E-mail: spes1004@hanmail.net
• 홈페이지: http://benedict.kr
• 시설 :
객실 현황: 독방 9, 2인 1실 3, 소그룹방 1
강의실 규모: 성당을 강의실로 사용
성당 규모: 약 150명 수용
식당 규모: 개인 피정용 동마다 2-3명 정도 사용가능한 소규모 식당.
15명 정도 단체 피정 집에 적절한 크기의 소규모 식당.
• 기타 사항 : 개인 피정 가능함, 소규모 피정(가족 피정) 가능함.
• 특이 사항 : 개인피정 및 15명 안팎의 소규모 단체피정은 사전에 예약하여 7일 한도 내에서 가능하며 음식물은 가져와 스스로 취사토록하며(주방 설비는 완비되어 있음) 사용료는 자유롭게 성당 봉헌함에 넣으면 됨.
<피정의 집 프로그램에 관한 소개>
별다른 피정 프로그램은 없고 수도원 전례에 참여하면서 스스로 피정하도록 하며 피정자들이 강의나 면담, 고백성사 요청 시 에는 기꺼이 응함.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은 1987년에 개원하여 정주서원定住誓願의 12 수도자가 '하느님을 찾는 삶'을 사는 수도승 공동체이다.
베네딕토
서방 수도제도의 입법자 또는 수도생활의 사부(師父)라 불리는 성 베네딕도(480-547)는 시대가 요청했던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모범적 삶을 살았으며 영적으로 절도와 조화를 이루는 훌륭한 수도 규칙서를 썼다. 그의 규칙서는 당시와 중세기의 수도생활 뿐 아니라 교회 및 사회생활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크게 기여하였고 오늘날도 그러하다. 우선 성인의 생애와 영성사 안에서의 역할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생애
베네딕도의 삶과 행적에 관해 전해주는 역사적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그에 대한 출전은 대 그레고리오 교황이 쓴 좥대화집좦 제 2권 뿐이다. 이 책은 베네딕도 사후 50년이 채 안되던 539-544년 사이에 그의 제자들의 증언에 근거하여 쓰여진 것이다. 저자는 베네딕도를 하느님의 사람의 전형, 백성을 위해 그리고 수도회를 위해 크게 기여하며 봉사한 카리스마적 인물로 묘사한다.
베네딕도는 480년경에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의 노르치아(Norcia)의 한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청년기에 수사학과 문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로마에 갔다. 그는 그 도시에서 사회적 퇴폐와 동료들의 방종을 목격하면서 환멸을 느껴 그가 추구하던 학문에 회의를 갖게 되었으며 한편 영적 생활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강하게 감지하게 되면서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로마에서 70여 km 지점에 있는 수비아코(Subiaco)라는 한적한 산골로 들어가 한 동굴에서 은거하며 3년간 독수생활을 하였다. 이곳은 영성의 대가가 될 그가 회심의 초기를 지낸 뜻깊은 연고지이다. 그곳은 기도와 묵상, 극기 중에 성령께로부터 양성되던 수련의 장이었으며 하느님과의 진정한 친교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곳이었다. 한편 어느 때보다 맹렬한 유혹과 투쟁하면서 시련의 수행 여정기간을 지낸 곳이기도 하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의 덕망이 점차 널리 알려져 많은이들이 지도를 받으러 왔다. 어느날 비코바로(Vicovaro)에 있던 수도원의 수사들이 찾아와 세상을 떠난 선임 원장을 이어 후임원장을 맡아주길 간청하였다. 그들의 간곡한 청원을 받아들여 원장으로 부임한 베네딕도는 규율이 문란하고 무질서한 그 수도원의 제도를 철저히 개혁하고자 하였다. 엄격한 규율을 요구하는 그에게 불만을 품은 수사들은 그를 해치려는 음모를 꾸몄다. 황당한 사건을 겪은 후 그는 동굴로 다시 돌아와 은둔생활을 하였다. 그의 주변에는 많은 구도자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을 위해 수비아코 산 주변에 12개의 수도원을 세워 각 공동체에 12명씩 분산 배정하여 생활하게 했으며 그는 중앙 수도원에서 수련자들을 지도하였다. 이것은 공동체적 행동양식에 잘 맞는 공생(共生)수도생활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는 그 지역 사제 플로렌시오와의 갈등으로 수비아코를 떠나야 했다. 평신도 신분의 베네딕도에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지도를 받는 데에 대한 그의 질투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529년경 베네딕도는 로마에서 약 140km 떨어져 있는 카씨노 지방의 웅장한 산악 높은 지대에 정착하였다. 거기에 세례자 요한 성당, 성 마르티노 성당과 함께 새 수도원을 세웠는데 그곳이 오늘 성베네딕도 수도회의 본부가 있으며 역사적 명소가 된 몬테카시노(Montecassino)이다. 이 수도원에 점차 수도자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베네딕도는 생활의 지침이 될 규칙의 필요성을 느꼈고 결국 수도생활의 규범이 될 역사적인 규칙서를 작성하였다. 이 규칙은 공동생활을 명백히 규정하고 순명을 최고의 덕으로 삼으며 재물의 사유(私有)를 금지하고 평생 한 수도원에 머무를 것(定住)과 특히 전례를 중요시하고 성교회의 가르침에 성실히 따를 것을 명하고 있다.
그는 몬테 카시노에 정착한 후엔 테라치나(Terracina)에 수도원 설립의 임무를 맡은 수도자들을 돕기 위한 단 한번의 방문 외에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또한 수도원 근처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던 여동생 스콜라스티카와 그 동료들에게 수도규율을 만들어 주었으며 영적 및 경제적으로 지원하였다. 그는 스콜라스티카가 죽은 지 얼마 안되는 547년에 세상을 떠났다.
2. 영성사 안에서의 위치
1) 베네딕도는 서방 수도원 제도의 시조 또는 입법자로 불린다. 그것은 그가 수도생활을 처음 고안했다는 의미가 아니고 동방에서 시작되어 서방에 들어온 수도생활을 뿌리 내리게 한 분으로서 잘 정립된 수도규칙서를 작성하여 수도생활 역사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뜻이다.
베네딕도 이전에 12개의 수도 규칙서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니 그것들이 베네딕도에게 도움을 주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중에서 아우구스티노의 수도 규칙서, 체사리오의 두 개의 규칙서 그리고 '스승의 규칙서'(Regula magistri)가 미친 영향은 현저하다. 체사리오의 둘째 규칙서는 베네딕도의 과업을 예시하고 준비시킨 역할을 했다고 본다. 예를 들면, 수도자들의 재산 공유와 정주를 엄격히 요구한다는 점이다. 베네딕도가 제일 많이 활용한 자료는 좥스승의 규칙서좦이다. 특히 베네딕도의 규칙서 제 1부의 많은 부분은 그 규칙서의 내용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베네딕도는 규칙서를 창안한 것이 아니며 기존의 다양한 자료들의 본질적인 요소들에 그의 고유한 카리스마적인 견해들을 첨가하여 종합하면서 모범적 규칙서를 만든 것이다. 그의 규칙서는 실로 교회 역사 안에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쳐온 전형적인 것이다.
2) 베네딕도는 규칙서를 작성할 때 은수생활의 전통 및 동.서방 공동생활의 장점을 받아들이는 한편 전통적 수덕의 지나친 엄격성을 피하며 절제와 중용을 지키고자 하였다. 그의 규칙서에 의한 수도자들의 침묵과 고독을 겸한 공동생활은 영적 자유를 누리기 위한 세상으로부터의 은둔과 그리스도교적 이웃 사랑의 실천을 위한 형제적 친교라는 두 가지 이상을 조화롭게 묶었다.
3) 베네딕도의 규칙서는 서방사회의 생활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수도생활 뿐 아니라 교회 및 사회생활에까지 크게 기여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황 비오 12세는 베네딕도를 좥유럽의 아버지좦라 불렀으며 바오로 6세는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6세기 중엽부터 그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는 수도자들이 점점 늘어났으며 9세기 초 부터는 그들이 전 유럽에 퍼져나갔고 또한 많은 선교사들이 배출되고 파견되어 유럽의 새로운 문화를 일으켰던 것이다.
특히 베네딕도의 기도와 노동의 일치 및 조화에 대한 가르침은 경제 생활 뿐 아니라 영성적 차원에서도 그리고 인문주의 문화 및 교육적 차원에서도 중요성을 갖는다. 이미 동방의 수도자들도 사막이나 수도원 안에서 노동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노동은 오직 한 가지 주요한 과제인 기도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에 그 여가를 메꾸기 위한 수단 또는 불가피한 경제 생활의 방편 정도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베네딕도에겐 노동이 기도 옆에 놓인 다른 하나의 주요 과제로 고려되었으며 따라서 노동은 기도와 함께 매일의 시간표에 배정되어 부과되었다. 기도와 노동의 조화에 대한 가르침은 하느님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일치, 관상과 활동의 일치를 실현하도록 깨우쳐 주었으며, 노동의 가치를 과소 평가하던 시민들의 개화를 촉진했고 중세기 새로운 문화의 토대를 준비하며 박차를 가한 저변 쇄신운동이기도 했다.
4) 베네딕도는 시대적으로 요청되던 성령의 도구로서 뛰어난 카리스마적 인물이었다. 그는 철저한 쇄신을 주도하던 강력한 지도력을 지닌 수도원 장상이었다. 그러나 그는 말보다 오히려 행동으로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면서 완덕에 나아가는 데 있어 사람들 각자의 특성에 따라 식별하여 적절한 방법으로 지도해 주던 권위있는 영적 아버지로서의 원장이길 원했다. 과연 그는 탁월한 영적 식별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의 규칙서는 당대 뿐 아니라 오늘까지 영적 식별을 위해 탐구해야할 소중한 고전이다.
3. 3 세가지 서원
성 베네딕도가 수도자들에게 요구한 서원은 세가지로 순명, 정주(定住), 수도자다운 생활의 전향이다(수도규칙 58, 17 참조). 그리고 겸손은 그의 가르침의 요약이다(수도규칙 7장 참조).
그에 의하면 수도자는 생활 전향이라는 철저한 회심을 통해 침묵, 고독, 절제 등 전통 은수자적 요소를 보존하면서 공동체에 정주하여, 겸손되이 규칙과 아빠스에 순명하면서 기도, 독서(lectio divina) 그리고 노동을 실천하는 중에 하느님을 찾는데 전념하는 사람이다.
3. 3. 1. 순명
수도자는 성서 말씀과 전통이 요구하는 것들과 공동체의 규칙,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원장에게 순명해야 한다(수도규칙 2, 1; 63, 13 참조). 이 순명은 불순명으로 인해 범한 죄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하느님께 되돌아감을 뜻하는 것이다(수도규칙 서론 2 참조).
그리스도께서 성부께 순명하셨듯이 그분을 본받아 수도자는 자신의 의지를 버리고 장상에게 순명해야 한다(수도규칙 서론 3; 5, 7, 13; 7, 34 참조).
베네딕도에 의하면 순명은 겸손에서 나오는 기본적인 덕으로서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이다. 이것은 어느 것도 그리스도보다 더 소중히 여기지 아니하는 사람들에게 알맞는 일이며, 장상으로부터 명령받을 때 그것을 하느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여 지체없이 실행하는 자세이다(수도규칙 5, 1-4 참조).
수도자는 힘든 일이나 불가능한 일을 명령받았을 경우 일단 순종의 자세로 받아들일 것이며 적절한 때에 불가능한 사유를 장상에게 설명한다. 그렇게 한 후에도 장상이 이미 결정한 명령을 고수할 경우엔 그것이 자신에게 유익한 줄 알고 하느님의 도우심을 믿으며 사랑으로 순종해야 한다(수도규칙 68, 1-5 참조). 순명은 장상에 대해서 뿐 아니라 형제들 사이에서도 서로 요구되는 것이다(수도규칙 71, 1-2 참조).
3. 3. 2. 정주(定住)
베네딕도는 그의 수도규칙에서 정주라는 낱말을 항구심, 인내심이라는 낱말과 같이 사용한다. 정주는 정해진 곳을 떠나지 않고 머무른다는 하나의 규칙대로 살기로 서원한 수도원에 일생 동안 거주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해진 장소에 신체적 머물음이란 국한된 개념이 아니고 한 번 정한 마음을 끝까지 바꾸지 않는 내적 견실성과 항구성을 포함한다(58, 9 참조).
베네딕도는 수도자들이 정주 서원으로 공동체에 견고히 결속되어, 공동 생활의 부담을 벗어버리려는 자세의 이기주의적 수도자(sarabiata)나 떠돌아다니는 방랑수도자(gyrobagus)(수도규칙 1장 참조)가 되지 않도록 예방하고자 한다. 수도자들은 정주 서원을 통해 완전히 공동 생활에 자신을 위탁하며 절박하거나 중대한 이유를 제외하고는 일생을 그 수도원 안에서 지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정주를 통하여 가정을 이룬다. 가정 정신은 참다운 겸손 없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서로간의 염려와 기쁨에 찬 형제애이다. 수도자들은 정주로써 일생 동안 한 수도원에서 규칙을 철저히 따르고 그들을 보살피는 아빠스에게 순종하면서 가장 낮은 자리를 찾아 겸손되이 봉사하면서 생활한다.
베네딕도는 수도자들이 충일하고 보람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들의 공동체가 진정으로 수도원다운 분위기를 이룰 필요가 있다고 보면서 봉쇄와 정주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봉쇄의 목적은 세상을 수도원 안에 끌어들이지 않으려는 것이며 한편 정주의 목적은 수도자들을 수도원 안에 머무르게 하여 그들의 임무인 수덕과 마음의 순결보존에 정진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봉쇄적 정주 생활은 수도자들이 악습을 고치고 덕을 닦는 봉헌생활에 전념하도록 기여하는 것이다.
3. 3. 3. 수도자다운 생활의 전향
수도자다운 생활 전향은 수도생활의 직접적인 목표 곧 마음의 순결과 관계를 갖게 되며 또한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필요한 수단들과 관련을 맺게 된다. 수도자는 이 서원을 통해 수도생활의 이상을 추구하면서 또한 좥수도 규칙좦이 요구하는 생활 방식을 따르면서 자신을 교정하고 개선할 임무를 스스로 부과하는 것이다. 이 서원의 내용은 수도자다운 생활로서 좥규칙에 따라 사는 생활좦이며 좥수도원에서 공동으로 사는 생활좦, 좥수도원 안에서 규칙과 아빠스 밑에서 사는 생활좦을 포함한다. 베네딕도 수도자는 좥수도규칙좦의 규정과 지침에 따라 자신의 생활을 개선하고 전향할 것을 서원한다.
그것은 성격상 전적으로 회수도적이며 정주 중에 공동체의 이상을 구현하면서 규칙과 아빠스 밑에서 사는 공동생활에 일생을 바치는 베네딕도회 특유의 수도생활 형태인 것이다. 수도적 생활 전향의 서원에 충실한 베네딕도 수도자의 본질적이며 진정한 하나의 표지는 완성을 추구하는 열정이다(수도규칙 72장 참조). 이 열정은 사랑이며, 사랑은 마음의 순결이다.
3. 4. 겸손
겸손은 베네딕도의 전체 가르침을 요약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영성 생활에 관한 그의 모든 가르침은 수도규칙의 제 7장 "겸손에 대하여"에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겸손은 성성(거룩함)을 추구하는데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중요한 자세이다. 베네딕도는 야곱이 꿈에서 본 층계에서(창세 28, 12 참조) 수도자가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연상한다. 그는 그 층계를 하느님께 도달하도록 하는 겸손의 단계로 보며 12단계로 나눈다.
겸손의 첫 단계는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을 잠시도 잊지 않는 것이다. 그분의 현존 앞에서 경외심을 가지고 언제나 죄와 악습, 이기적 욕망에서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한다. 둘째 단계는 자신의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 그리스도의 모범을 행동으로 본받아야 한다. 셋째 단계는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셨듯이, 장상에게 순명하는 것이다. 넷째 단계는 순명 중에 겪게 될 어려움과 시련 중에 닥쳐오는 고통을 참아내는 인내를 요구한다. 여섯째 단계는 자신을 낮추어 모든 것과 온갖 여건에 만족하는 평온함이다. 일곱째 단계는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로 표현할 뿐 아니라 마음으로 확신하는 자기 낮춤이다. 여덟째 단계는 공동체와의 일치이다. 공동규칙이나 장상들의 모범이 권고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다. 아홉째 단계는 혀를 억제하며 절도를 지키는 침묵의 자세이다. 열 번째 단계는 감정의 조절이다. 열한번째 단계는 지혜롭고 절도있게 말하는 것이다. 열두번째 단계는 마음과 행동으로 언제나 겸손을 드러낸다.
베네딕도에 의하면 수도자는 겸손의 이 모든 단계를 오르면서 하느님의 사랑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이 완전한 사랑의 단계에 이르는 이는 공포심 때문에 지켜오던 모든 것을 이제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덕행에 대한 기쁨에서 기꺼이 실천하게 된다.
정주
정주(定住)
일생동안 수도원 밖으로 나가지 않는 수도자들이 있다. 적어도 여기에는 어떤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그것이 주목할 만한 것이든 아니든 또는 좋은 것이지 아닌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간혹 이것이 어떤 이에게는 정주의 의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주함’의 한 가지 의미는 한 수도원에 머무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아주 순수하고도 꾸밈없는 사실이다. 비록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닐지라도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정주는 지리적인 이상의 중대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독신은 결코 결혼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정주는 ‘결코 아무데도 가지 않는 것’을 뜻한다. 수도자는 자기가 속한 수도원에 정주 서원을 발한다. 그것은 그가 수도원에 속하여 수도원 안에 살면서 아빠스를 으뜸으로 모시고 어떠한 말에도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도자는 자주 또는 오랫동안 수도원을 떠나 있을 수 있으며 그것이 결코 그의 정주 서원을 어기는 일이 아니다. 그가 수도원을 떠나 있어도 마음으로는 수도원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우선 그것은 믿음의 행위인 것 같다. 수도회의 규칙에 자신을 묶는 수도자는 그 단체에 위탁하게 된다. 그의 위탁은 비록 규칙이 자신을 묶는 범위가 상당히 넓다 하더라도 진정한 것이다. 주교에게 자신을 묶는 교구 사제도 역시 위탁되어 제한을 받게 된다. 이것은 하나의 종교적인 행위이고,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자유의 도표를 신중하게 그리는 행위이며, 아버지의 뜻에 자신을 묶으신 주님을 모방하는 행위이다.
수도자는 자신을 그의 수도원에 묶는다. 어떤 면에서 수도원은 그의 신부(新婦)이다. 그는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수도원을 아내로 맞아들인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고 이스라엘을 배우자로 택하여 인류 가족을 가장 사랑하는 자로 만드신 하느님을 모방하여 그렇게 한다.
사랑은 선택이다. 선택이 없으면 모험도 없다. 또한 선택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 이러한 신앙의 행위가 정주함의 가장 깊은 면이며 그 핵심이다. 또한 이 행위는 마음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 다리를 건너거나 또는 이 계단에 발을 들여놓거나 혹은 이러한 선택을 함으로서 수도자는 주님과 운명을 같이 하며 그 자신과 그의 장래를 하느님의 섭리에 내맡긴다. 일단 그리고 깊이 행동하기만 하면 이 행위는 수도자를 다른 방법으로 도달할 수 없는 이로운 수준에 이르게 한다. 막연한 욕구로 방황하는 수도자는 자유롭게 되지 못한다. 수도자는 그의 아빠스와 수도원에 취소할 수 없을 만큼 묶여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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