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가위

Posted 2009. 10. 16. 19:44

[지하철]
  한 낮의 지하철은 비교적 한가롭더군요. 군데군데 좌석도 비어있고 서있는 사람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객차 내에서 물건 파시는 분이 계시더군요. 한가로운 한 낮의 승객들의 무료함으로 인해 판매 상품에 관심과 더불어 집중하게 할 수 있고 또 넉넉한 승객들의 마음을 잡아 판매를 하자는 심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아주머니가 핸드카트에 박스를 얹어서 담아온 물건은 "밤가위" 였습니다. 한개 삼천원. 판매 전 밤가위 설명과 함께 보여준 밤까기 시범은 힘 별로 안들이고 단단한 밤 껍질을 손쉽게 과일 깍듯이 돌려가며 깍더군요. 참 신기했습니다.
"밤 가위도 있었네?"



[아버지 토마스]
  어머니가 환갑도 못 넘기시고 갑자기 병으로 돌아가신 뒤 어머니 기일의 제사는 참으로 거창하게 지냈습니다.교자상 하나가 모자라 두개를 붙여놔도 음식 자리가 비좁았습니다. 아버지의 뜻이였지요.
"많이 차려라!"
  생전에 어머니에게 잘해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보상하는 의미가 컷던 듯 싶습니다. 기일이 다가오기 한 두달 전부터 아버지는 여수에 사시는 고모님에게 전화해서 종류대로 많은 양을 부탁했고, 공수되어온 생선을 일일이 손질하고 말리셨습니다. 반찬으로 쓸 것이 아니라 어머니 제사에 쓰일 것이였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그러했기 때문에 우리 형제들은 제사 당일 모두들 하루씩 휴가를 내야했고 하나뿐인 며느리인 바울라는 특히 많은 양의 음식을 하루종일 해야 했었습니다.
   남자인 나는 그다지 할일이 없어 잔심부름만 했는데 그다지 할일이 없기는 아버지도 마찬가지 였었습니다. 하지만 꼭 한가지의 음식은 아버지께서 직접 하셨는데 그것은 "밤까기"였습니다. 마트에 미리 까놓은 밤을 사오는 것을 싫어하시고 밤을 물에 불려가지고 나직히 흥얼거리시면서 이쁜 모양이 나오도록 깍고 다듬었었습니다.

[지하철]
   요긴하게 쓰시라고 아버지께 하나 사다 드릴 법도 하지만 나는 밤가위를 사질 않았습니다. 밤을 깔 아버지가 이제 계시기 않기 때문입니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지금은  미리 까놓은 밤을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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