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읍씨 가족

Posted 2009. 12. 10. 21:55

저녁을 먹다가 성당 다니는 것이 어떠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집사람이 먼저 얘기를 꺼냈는지 제가 먼저 꺼냈는지는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아무튼 집사람과 저는 그즈음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은 분명했습니다.

[천주교 용인공원묘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를 천주교 용인공원묘원에 모셨습니다. 중앙 성직자 묘역 좌측 산 꼭대기 군인 대공초소 조금 밑이지요. 아버지가 어머니 묘소에 두 달에 한번꼴로  가신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 지나서였습니다. 시내버스타고 다시 시외버스로 갈아타고 다시 한참을 걸어야하는 차없이 가기란 여간 힘든 코스가 아닌 곳입니다. 그래서 차로 모시고 같이 다니기로 하였습니다. 

때론 그늘막을 가지고, 때론 테이블이 있는 큰 파라솔을 가지고 야외 놀이삼아 다녔습니다. 날이 좋을 때는 성직자 묘역 입구에 조금 넓은 주차장 한 켠 그늘에서 삼겹살도 구워먹고 심지어 육계장도 끓여 먹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에게로 놀러 다녔습니다.

어머님 산소가 산 높은 곳에 위치한 탓으로 공원묘원 내의 성묘 온 다른 가족들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그 가족들은 무슨 책 (기도서인듯)을 펴고 기도를 하였지만 우리 가족은 기도를 할 줄 몰랐습니다. 그냥 절만 했습니다. 유일하게 성당을 다니시는 아버지는 그저 묵묵히 계실뿐...

[남성구역모임]
어머니가 안계시자 가끔씩 돌아오는 아버님 댁에서의 남성 구역모임 후의 저녁준비는 자식들이 준비해야 했습니다. 아버님 혼자 사시는 적적한 집에 모처럼 구역 손님들로 북적였던 기분좋은 저녁이였습니다. 구역모임 때마다 오신 분들은 제가 아들이어서 그랬는지 누님과 여동생을 제쳐두고 저에게 성당에 나갈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저는 그 때마다 그냥 건성으로 "그래야죠.."하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예비자 교리]
저녁을 마치고 우리 다섯 식구는 성당을 찾아 가보기로 했습니다. 물어물어 찾아간 성당은 이미 늦은 저녁이라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도 보이질 않을 정도로 적막했습니다. 이리 저리 기웃거리며 이대로 집에 갈까 말까하고 갈등하고 있는 차에 이상하게 보였던지 어느분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더군요.
"성당엘 다닐려구요.."
"교리 시작한지가 한참됐을건데..될려나?..수녀님에게 물어볼께요. 잠시만요.."
얼마지나지 않아 오시면서
"너무 많이 진행되서 지금은 안되고 다음 교리 때 오셔야 할 것 같네요."
"할 수 없죠. 그럼..."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수녀님께서 나오시더군요.
"잠시만요. 신부님께 한번 여쭤볼께요."
총총히 사라지셨던 수녀님께서 오시면서
"온 가족이 오셨으니 신부님께서 특별히 허락하셨어요"
어린 막내는 나이 때문에 안되고 저와 집사람 아들 둘 이렇게 네명이서 얼마남지 않은 예비자 교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세례명]
교리를 시작한지 얼마되지않아 남성 구역장님과 여성 구역장님 두 분이 집에 오셨습니다. 여러가지를 물으신 끝에 세례명을 정했냐고 물어보시더군요. 저는 이미 "바울"로 정하기로 마음먹고 말씀드리니 "바오로"로 정정해 주셨습니다.

대개 세례명은 그 성인이 누구인가를 알고 그 성인의 행적이나 영성이 자신의 삶에 좋은 모범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며 정하면서 자신의 생일 언저리에서 정하지만, 제가 바오로로 정하니 집사람이 저와 비슷한 세례명으로 한다고 "바울라"(이때만해도 바울라가 바오로의 여성형인 것을 몰랐었습니다)로 정하더군요. 이렇게 바오로, 바울라로 정해지자 아이들의 세례명도 성씨처럼 "바"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였습니다.
아쉽게도 남성 구역장님이 참조하라고 건네준 성인 리스트에는 "바"로 시작하는 성인 이름이 "바우델리오" 하나 밖에 없었는데 둘째가 냉큼 채가버렸기 때문에 첫째는 ㅂ(비읍)으로 시작하는 "발레리오"를 자신의 세례명으로 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첫 영성체를 마친 막내는 ㅂ(비읍)의 우리집 전례(?)에 따라 "바실리오"로 정하여 주었습니다.

바오로, 바울라, 발레리오, 바우델리오, 바실리오 이렇게 "ㅂ(비읍)씨" 가족이 이루어졌습니다.
바울라와 저는 신앙 안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신앙가족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이루어졌습니다.
또, 부모님 묘소에서 기도도 드리고 싶다는 소망도 이루어졌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장난겸 세례명을 별칭으로 부르더군요.
"발레리노", "바보델레오", "마실레오"

경향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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